축복을 통한 복귀의 길

천성경 제4편3장2절1항

2절 축복을 통한 복귀의 길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세상의 것을 다 부정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자기 생명을 투입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생명력이 비례적으로 투입되어 들어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생명과 자신의 생명이 일체가 되면 비로소 타락하기 전의 아들로서,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아들로서 복귀됩니다. 이렇게 하여 믿음의 기대가 세워집니다. 믿음의 기대가 세워졌다는 것은 조건적인 입장에서 하나님을 불신함으로써 타락했던 것에서 믿을 수 있는 아담의 자리, 즉 소망적인 아담의 자리에 다시 선 것입니다. 이렇게 된 후에는 사탄과 싸워 실체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아벨의 자리에서 가인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사탄과 주먹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탄이 열만큼 사랑하면 나는 열다섯만큼 사랑하고, 사탄이 열다섯만큼 사랑하면 나는 스물만큼 사랑해야 됩니다.

메시아를 통한 혈통전환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첫째는 부모를 잃어버렸고, 둘째는 사탄의 피를 받았고, 셋째는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거꾸로 올라가야 합니다. 믿음의 기대를 이루고 실체기대를 이루어야 메시아를 바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외적으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까지 이루자는 것입니다.

아담이 믿음을 잃어버렸고 실체를 잃어버렸으니, 믿음의 기대를 찾고 실체기대를 확보한 다음에야 사랑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담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냐? 먼저는 믿음을 잃어버렸고, 그다음에는 실체를 잃어버렸고,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세 가지입니다. 이것을 찾자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의 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믿음의 기대는 자기가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닦아 주체적인 입장에 서기 위해 필요합니다. 그다음에는 자기 스스로 목적을 향해 갈 수 있는 자신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되돌아와서 실체기대를 세워야 됩니다. 실체기대는 아벨 앞에 가인을 굴복시키는 기대입니다. 가인은 원수의 자식입니다. 이 가인을 통해 역사적인 투쟁이 벌어져 나왔고, 악의 모체가 뿌리를 박았고, 지금까지 사망의 물결이 역사시대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악의 요건과 악의 편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벨적인 입장, 즉 하늘 편에 선 사람이 반드시 가인 입장에 있는 사람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우리가 갈 길은 두 길입니다. 그것은 가인과 자기를 위해 가는 길입니다. 원수를 위한 길까지 거쳐 가야 합니다. 그것은 가인을 수습해서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실체기대란 무엇이냐? 아벨이 자신의 길을 닦았다 하더라도 가인을 완전히 굴복시키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가지 못합니다. 원수를 이끌고 가야 합니다. 원수와 싸우며 가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이끌고 가야 합니다.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복귀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는 것은 원죄를 벗기 위해서입니다. 원죄를 벗게 되면 하나님의 생명권과 사랑권 내로 새로이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접붙여야 됩니다.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로 만들기 위해서는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를 접붙여야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돌감람나무와 같은 인간을 참감람나무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 자체를 부정하는 과정을 거쳐서 새로운 긍정, 전폭적인 긍정을 제시하는 과정을 거쳐 넘어가야 됩니다.

인간은 완성 기준에 들어갔다고 해도, 이것은 아직도 혈통적으로는 완전히 청산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이므로 혈통적으로는 아직 청산되어 있지 않습니다. 혈통적 청산을 하는 데는 반드시 메시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기대, 실체기대,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타락한 인간에게는 절대로 필요합니다. 최후의 문제는 어떻게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만들어 메시아를 통해 자신이 혈통전환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는 무엇을 표준 하고 믿어야 하느냐? 인류조상 아담 해와보다도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된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싸워야 되는데 누구하고 싸워야 되느냐? 형제끼리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하고 싸워야 됩니다. 무슨 새로운 선한 일을 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사탄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선한 일을 하려고 할 때는 사탄도 나타나지만 하나님도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선악의 중간 위치에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악을 굴복시키고 선을 남김으로써 악이 자동적으로 순응하는 자리에 서야만 선한 사람이 됩니다. 그것을 원리적으로 말하면 실체기대 완성입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탄과 싸워서 이겨야 됩니다. 사탄을 이겼으니 상을 받아야 됩니다. 세상에서는 무슨 상패를 주고 부상으로 돈을 주고 하지만 그런 시시한 상이 아닙니다. 상은 상인데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상으로 받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메시아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우리를 다시 낳아 주기 위한 부모로 오시는 분입니다. 생명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낳아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느냐? 부자관계를 중심삼은 부모도 부모이지만, 본래 사랑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하늘을 대표해서는 하나님이 사랑의 주체라면, 땅을 대표해서는 아담이 사랑의 주체입니다. 아버지가 사랑의 주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사랑의 주체이기 때문에 그 주체 되는 아버지 앞에 상대 되는 어머니가 나와야 됩니다. 이것을 두고 기독교에서는 아직까지 찾아지지 않은 아버지 어머니의 자리를 찾아 나오는데, 그 길을 이렇게 찾아가야 한다고 결정적으로 가르쳐 준 것이 신랑 신부 이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