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을 위한 바다낚시

천성경 제6편4장4절4항

천성경 제6편 4장 4절 4항

바다낚시를 하러 가도 그냥 수평선만 있는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바닥에 돌이 있는 데로 가야 합니다. 돌이 있어서 숨을 수 있고 벌레들이 붙어사는 데에 고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 고기들이 있는 곳은 반드시 물결이 칩니다. 3미터 5미터의 물결이 친다는 것입니다. 그런 데에 가면 고기가 있습니다. 그런 곳에 가까이 가서 고기를 잡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온도를 맞춰서 낚시질을 합니다. 온도가 어느 정도에는 어떤 고기들이 있는지를 벌써 압니다. 낚시를 몇 번 드리우면 고기들이 벌써 밑감을 건드립니다. 낚싯대를 빨리 감으면 위로 올라오고 천천히 감으면 가라앉는 것입니다. 천천히 감으면서 지금 수면의 몇 분의 1에 낚시가 흐르는가를 다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런 기온에서 큰 연어는 어느 정도에 온다는 것을 선생님은 압니다. 연어는 보통 바닥에 있습니다. 바닥에 먹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벌레들이나 게 같은 것들이 거기에 있으니까 바닥으로 몰린다는 것입니다.

낚시를 하러 바다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알래스카의 정신이 뭐냐 하면 연어의 정신입니다. 연어는 새끼를 낳기 위해서 4천 마일, 5천 마일의 대해를 거쳐 떠났던 자기 고향을 찾아옵니다. 인간의 복귀노정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몇 천만리를 떠났더라도 다시 찾아갈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낚시를 하는 데 있어서도 그 이상 흥분되는 낚시가 없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다른 고기들이 물었을 때는 그저 몇 번만 감으면 나오지만 이것은 수십 번을 감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낚시를 곧잘 합니다. 40일 이상 밤낮으로 해봤습니다. 선생님이 낚시질해서 잡으려고 하는 고기는 첫 번에 데꺽 무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 물어라. 송사리 떼야, 모여라.’라고 해서 맨 나중에 지긋한 놈이 물 수 있게 기다립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여러분이 전도하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끈이 달렸는지 모르고 나가 전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잡아당길 한때가 옵니다. 그러니 얼마든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합니다. 지금 그런 표준을 가지고 나가기 때문에 여러분은 대번에 전도한다는 조급한 마음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배를 타고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앉아 있을 때는 한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거기서 산보를 할 수 있습니까? 비좁은 데서 움직이고 거기서 요리를 해야 됩니다. 거기서 극장 구경을 할 수 있습니까, 친구가 있어 놀러 갈 수 있습니까? 조용히 해야 하니까 음악도 못 듣습니다. 그러니까 바다를 바라보면서 바다하고 하늘하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바다와 하늘이 하나되는 거기에 선생님 혼자 있으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거기에서는 하나님도 혼자이고 선생님도 혼자이니까 그 기분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고기를 잡으러 나왔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역사상에 선생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왜 자꾸 바다에 나가느냐? 영적으로, 모든 면에 이익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정신이 산만해서 세계선교라든가 교회문제 등 전체를 생각해야 될 것을 몇 분의 1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다에 나가면 전체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바다가 상당히 좋습니다. ‘이래서 낚시도라는 말이 나왔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선생님은 낚시를 하러 가서나 어디 가서나 생각을 많이 합니다. 낚시를 오래 한 사람은 낚싯대를 열 번 늘어뜨리면 열 번 생각하고, 백 번 늘어뜨리면 백 번을 생각합니다. 그러니 열 번 늘어뜨리면서 백 번 생각하게 된다면 앞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냥은 육체운동으로서 육체건강을 위한 것이고, 낚시는 정신건강을 위한 것입니다. 앉아서 낚시질할 때는 자기 일생을 회상하고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자신의 과거를 분석하고 미래 생활에 대해 설계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위엄을 갖추고 자기 자신을 차분히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동양에서는 낚시도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낚시를 몇 년만 하게 되면 고기를 잡았더라도 놓아주고 싶지, 잡은 고기를 먹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그것이 진짜 도입니다.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도덕적 정신적인 발전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 것을 배움으로써 잔인성을 없애 버릴 수 있습니다. 어떤 부서의 장이 되었으면 그 부서 요원들을 대해 신사적으로 대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모든 인간을 화합할 수 있는 하나의 도장이 되어 있습니다. 

역사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을 가리켜 틀렸다고 말을 못합니다. 선생님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고기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앉아 낚시를 하면서 ‘너희는 나 같은 남자를 처음 보지? 너희를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너희를 연결시켜서 어장을 중심삼고 인류의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너희가 창조된 본연의 목적이 아니냐? 그렇게 된다면 너희의 살을 먹은 사람은 나쁜 짓을 안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낚시를 할 때 ‘내가 주인이다. 다 오너라!’라고 하면, 고기들이 전부 몰려옵니다. 그러면 먹이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낚시를 하면 언제나 주위 사람들보다 더 많이 잡습니다.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종적인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면 그렇게 됩니다. 거기에서 색다른 광채가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서 보통의 빛이 난다면 선생님은 특별한 빛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빛을 고기들이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기들이 아무리 오지 말라고 해도 몰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