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익사상을 중심한 천주통일(89115)_2부

자, 이러한 마이크가 있을 때 마이크에게 '너는 어디에 있느냐?' 하고 묻게 될 때는 '나는 대한민국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고, '대한민국의 어디냐?' 그러면 '청파동에 있는 통일교회 본부교회의 탁상 위에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중적인 답을 하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들, 고향이 어디냐고 묻게 될 때는 어느 도, 어느 군, 어느 지방, 이렇게 말하지요? 어느 도가 있어 가지고 그 도 안에 있는 어느 곳이다, 이렇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영계에 가면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봅니다.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물어 본다구요. 영계에 가 있는 영들이 지구성에만 사는 것이 아니거든요. 모든 별의 세계에 전부 다 흩어져 있기 때문에 어느 위성에서 왔느냐 하는 문제가 대번에 문제된다는 거예요. '어디서 왔느냐?' 할 때, '지구성에서 왔습니다' 하게 되면 '죽은 지 얼마 안 됐구만' 이렇게 말한다구요. 어느 별에서 왔다 할 때는 몇천 년, 몇만 년, 몇천 만 년 됐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 사람을 대할 때가 온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대번에 묻기를 '어느 위성에서 왔느냐?' 이렇게 묻는다는 거예요. 이 우주를 중심삼고 어느 위성 어디서…. 그렇게 이중적인 내용을 포함해 가지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으로 말하게 되면, '어디에 사느냐?' 하게 되면 '정주에 산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정주 어느 면이냐?' 그러면 '덕언면에 산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언제나 이중적 답을 하게 된다 이거예요.
왜 그러냐? 뭐 이런 얘기하자면 시간이 많이 가지만, 인간은 이중구조로 돼 있다는 거예요. 전체 목적과 개체 목적을 중심삼고 비로소 안위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묻고 답하는 모든 말도 이중적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에 비로소 자리를 잡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중적인 답을 하게 된다는 것을 원리적 관점에서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람들한테 '당신은 어디에 살우?' 이렇게 물어 보면 무슨 답을 하겠어요? '고향이 어디요?' 하게 되면 어떻게 대답해야 돼요? 미국 같은 나라에서 '고향이 어디요?'  하고 묻게 될 때 '아, 정주요' 이렇게 대답하면 미친 사람이 돼요. 멀면 멀수록 전부 설명을 해야 되는 거예요. '한국의 평안북도 정주군에 있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해 가지고 확실히 해줘야 돼요.
이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우리들은 종횡의 관계를 떠날 수 없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생활환경, 나타나는 현상까지도 거기에 박자를 맞춰 가지고 동화되고 전진한다,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는 국가 소유를 인정하고─체제가 달라요. 공산주의는 체제가 국가 소유예요 하나는, 민주세계는 개인 소유를 인정해요.
개인 소유하고 국가 소유하고 갈라질 수 있느냐? 갈라질 수 없다 이거예요. 이 물건은 개인 소유예요.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개인 소유인 동시에 국가 소유예요. 이 물건은 전체를 대표해 있고, 그다음엔 교회라는 환경에 있어서 교회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소유가 되려고 하고 전체의 소유가 되려고 하는 이중적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소유 관념을 중심삼고 볼 때도 전체적인 소유 기준과 개인적 소유 기준이 분립되어서 투쟁한다든가 하는 이걸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이것이 한 자리에 있어 가지고 두 내용으로서 '나는 어느 나라의 것이다. 나라 것인 동시에 교회 것이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것은 이와 같은 나 하나를 중심삼고 전체의 소유적 기반과 개체의 소유적 기반을 갖춘 자리에 머물러야 된다 하는 개략적인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자로 말하면 '그 여자는 누구야?' 할 때는 어떻게 대답하나요? 거기에는 대번에 가정을 대표한 아버지 어머니가 들어가는 거예요. '저 여자는 아무개 딸이다' 이렇게 돼요. 그 다음에 '저 여자는 아무개의 아내다', '저 여자는 아무개의 누이다' 이렇게 돼요. 이게 복합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소유의 범위를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보면 이것이 이중적 내용을 갖고 있지만, 종적인 세계, 하늘땅을 중심삼고 볼 때는 동서남북 사방성까지 확대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물건한테 '너는 누구의 소유가 되고 싶으냐?' 하고 물어볼 때는 '세계의 소유가 되고 싶다' 그런다는 거예요. 그러면 '세계의 소유뿐만이냐?' 할 때는 '아니야. 하늘나라의 소유가 되고 싶다' 그런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물건이 소유되는 그 모든 것은 어디에 속하고 싶겠느냐, 이 우주 전체가 속한 그 전체는 어디에 속하고 싶겠느냐 하게 될 때는 '하나님에게 속하고 싶다'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어디에 속하고 싶으냐? 눈에 속하고 싶으냐, 발에 속하고 싶으냐, 손에 속하고 싶으냐, 마음에 속하고 싶으냐, 몸에 속하고 싶으냐, 어디에 속하고 싶으냐? 이런 문제를 파고 들어갈 때, 이것의 답은 하나여야지 둘이 되면 안 되는 겁니다.
하나의 답, 그 하나의 답이라는 것은 동서남북 전후좌우 상하가 '옳소!' 해야 됩니다. '옳소!' 할 수 있는 답이라야 거기서 끝나 가지고 안식이라는 게 벌어져요, 안식. 정착이라는 것이 벌어집니다. 정착이 자기 마음대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방이 균형을 취한 자리에서 정착이 된다는 거예요. 왜 정착이 돼요? 정착이 됨으로 말미암아 중심의 자리를 차지한다, 중심이 설정된다, 이런 말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