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러면 `하나님과 나'인데, `당신! 자랑할 게 뭐요? 아버지! 자랑할 게 뭐요? 엄마! 자랑할 게 뭐요?' 아들이 그럴 때 `얘 이 녀석아 너 밥벌어 먹이는 것이지' 하면 그거 만족해요? 밥 하루 한 끼니 먹여 줘도 무엇이 그리우냐 이거예요. 사랑이 그리워요. 사랑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분석해 보니까 사랑이 그렇게 좋은 줄 몰랐지요? 야 이거, 전후 좌우 상하를 그저 전부 다 자연적인 인연으로 재까닥재까닥 만들어 가지고, 둥글둥글 만들어 가지고 어디에 갖다 놔도 어울리는 거예요, 어디에 갖다 놔도.
처음 시집 오는 색시 말이예요, 그 문중이 좋아해요, 안 좋아해요? 시라리(혼수)감을 몇 트럭을 싣고 오니까 좋아하지요? 그거예요? 왜 문중이 좋아해요? 색다른 사랑의 맛을 갖다 주기 때문이예요. 며느리 맛은 또 다르거든요. 그렇지만 저 가운데 사랑하는 마음이 흘러갈 때는 그게 다 보이지 않아요. 참 이상하지요? 그래, 남자가 사랑에 미치고 여자가 사랑에 빠지면 건질 수 없다는 것도 그래서 하는 말이라구요.
`하나님, 당신 자랑할 게 뭐요?' 하면 `야 이 녀석아 물어 볼 게 뭐 있어? 내 손에 의해 천지의 조화, 모든 것이 흘러 나가는데, 내가 요술쟁이같이 되라 하면 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한번 볼래?' 그러겠어요? 천만 년 매일같이 다른 것이 나왔댔자 무슨 상관이 있어요? 그거 만든 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그거 볼 뿐이지요.
능력 많은 하나님 별 거 아니예요. 알겠어요? 하나님에게 지식이 필요있나? 전지니까, 알지 못하는 것이 없지요. 지식이 필요있나요? 지식의 대왕인데 지식 가져서 뭘해요? 앉아 가지고 쫄쫄쫄 뭐는 어떻고 옛말이나 잘하는, 그거 뭐라고 할까? 할 일 없어 가지고 입담 팔아 먹는 할아버지밖에 더 돼요? 그거 무엇이 필요해요?
권력을 가지고 `야 이놈들아 이리 와' `예이' 이렇게 매일같이 해보라구요. 밥 먹을 수 없게 해봐요. 얼마나 죽을 지경이겠어요. 이건 불원한 장래에, 순식간에 싫증나요. 그렇지만 춘하추동 사시계절 싫증 안 나는 놀음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도 그거 좋아하겠어요, 안 좋아하겠어요? 내가 하나님이라도 그거 좋아하게 되어 있지 뭐. 틀림없는 사실이라구요.
하나님보고 `당신 자랑할 게 뭐요?' 이래 봤어요? 우리 같은 사람은 질문이 예리하거든요. `집어치워요' 그러면 최후에 그래요. `얘 너 모르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사랑이야. 사랑을 제일 좋아해', `사랑 보여주'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사랑을 보여 줄 수 있어요? 사랑 보여달라고 하면 입부터 싹 하고 눈부터 웃어요. (웃음) 그래, 웃는 것이 좋다는 표시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웃는 길을 따라서 사랑은 여행을 하느니라. 맞아요, 안 맞아요? 「아멘」 웃고 안으려고 하는 곳, 웃고 두드려 주는 곳을 사랑은 찾아 여행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자도 매일같이 자기를 품고 좋다고 비벼대고 두드려 주는 할아버지한테 쫄랑쫄랑 가 가지고 할아버지 품에 떡 안기는 거예요. 또 두드려 달라는 거예요. (웃음) 그게 아침밥 먹는 것보다도 좋고 자는 것보다도 좋다는 거예요. 나 모르겠어. 그럴 것 같아요. 이렇게 볼 때 하나님도 별수없지요.
그러면 하나님 앞에 사랑의 보따리를 내가 도적질했다면 보좌고 뭣이고 버리고 찾으러 올까요, 안 올까요? 이놈의 사랑 보따리가 도망다니네. 그러면 도망다니는 사랑 보따리 찾아 다닐까, 안 다닐까? 답변해 봐요. 하나님이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예요, 하나님은 체면 불구하고 사랑 보따리 찾으러 돌아다니겠어요, 안 돌아다니겠어요? 그게 전부 다 똥통을 거쳐서 나간다면 그 똥통을 하나님이 거치겠어요, 안 거치겠어요? 답변해 봐요! (웃음) 안 거치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웃음) 다 알긴 아누만, 그 주제에. 자, 이렇게 요사스러운 조화가 어디 있나요? 하나님보다도 멋진 조화를 가진 것이 사랑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