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논리가 벌어져요. 아시겠어요? 아하, 이렇게 볼 때에 멀어진다고 나쁜 게 아니구만.
우주의 조화는 또다시 축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것이 축의 사랑과 접붙이면 축으로부터 내려오는 힘이 지금까지 할아버지 할머니의 멀어진 그 사랑을 감싸서 주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우주의 존재는 이 모든 전후 좌우의 사연, 사실을 알게 될 때 불평하고 살게 안 되어 있느니라.「아멘」
자, 그러면 여기서 결론이 나온다는 거예요. 아무리 구형이라 해도 반드시 여기는 종횡을 중심삼고 연결 지을 때 요 길이와 요 길이, 전후 좌우를 통한 이 길이가 전부 다 똑같은 데 있어서 이상적 기준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종적 사랑은 말이예요, 할아버지하고 손자와의 관계에서 손자를 자기와 같이 사랑하게 될 때, 또 이 종적 기준을 중심삼고 영원히 이것이 확대되기를 바랄 수 있는 사랑을 하게 될 때, 그 사랑이 변치 않는 한 이것은 남아진다 이겁니다.
이렇게 지탱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지구의 남자 여자, 플러스 마이너스라든가 하는 이성성상이 여기에 언제든지 보조를 맞출 줄 안다는 겁니다. 그러면 종적인 기준이 여기에 보조를 맞추느냐, 횡적인 기준이 보조를 맞추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종적인 기준은 뜯어고칠 수 없어요. 그걸 마음대로 `야야, 너 이렇게 돼' 하면 종이 없어요. 종적인 기준이 머무는 곳은 한 자리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횡적인 기준이 머무는 곳은 360도가 있어요. 그러면 어디에 맞추어야 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종횡을 맞추기 위해서 이것은 변해서는 안 돼요. 부부끼리 같이 살더라도 아들딸을 왜 낳아 놓고 가야 되느냐? 아버지한테 왜 낳아드려야 되느냐? 이것은 생명의 인연의 확대가 남자를 통해서 벌어지기 때문이예요. 부자지 관계는 종적인 기준이기 때문에…. 종적 기준이 무너져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 무너지면 여기에 달린 모든 것이 다 없어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것을 언제나 보조해야 하는 것이 이치이기 때문에 이혼을 하더라도, 엄마가 갈라지더라도 아들딸은 남겨 놓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 종적 인연이 갈라지면 큰일납니다. 횡적인 것은 360도 가운데서 보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창조를 왜 했느냐? 그게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이 왜 창조를 했느냐? 그런 생각 해봤어요? 왜 창조했느냐?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이기 때문에 종적 기준을 지키는 주인입니다. 알겠어요? 종적인 기준을 언제나 사랑을 가지고 영원토록 존속시키면서 보관하고 지키는 주인 양반입니다.
종적이라는 그 자리는 딱 혼자 서 있어야 하는 점과 같은 그 자리니까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어요. 그러니 거 얼마나 지루하겠어요? 아이고, 이동하고 싶은데…. 그런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도 이동하고 싶은데 이동을 어디서 해야 되느냐?
이거 종적인 것을 꽈악 압축하면 말이예요, 끼―익 이렇게 나옵니다. 그것이 어디서 옆으로 퍼질 것이냐? 쭉 누르면 3분의 1 자리냐, 절반 자리냐? 어디예요? 요거 길이에 대해서 힘이 같이 비례가 되어 가지고 밀리는 데에 있어서 어디가 밀리느냐? 제일 힘을 많이 받는 곳이 가운데라는 거예요. 비례에 맞는 힘이 여기에 제일 많이 받는데, 내려오는 힘에 못 이겨 가지고 뻐드러져서 이리로 퍼져 나가는 거예요. 눌러 놓으면 무엇이 되느냐? 점이 돼요. 눌러 놓으면 점이 되고 점 대신 횡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했다 잡아당기면 이런 놀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운동을 하다 보니 이것은 자연히 원형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왜 하느냐?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하면 무소부재하는…. 그 무소부재라는 것이 중심도 없고 아무데나 있다는 말이예요? 모든 것은 중심이 있어요. 사람도 조직을 만드는 데는 중심이 있지요. 개미떼도 움직이는 데는 중심을 따라 움직이고, 벌떼도 여왕벌을 중심삼고 움직이잖아요? 모든 조직체나 계열적인 모든 것은 플러스 마이너스,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어서 확대되는 것이 우주 존속원리입니다.
자,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시느냐? 저 동쪽에 있기를 바라나요? 저 꼭대기에 계시지요. 그 꼭대기가 어떤 자리냐? 수직의 자리입니다. 저 북극성과 같은…. 북극성은 한 곳에서 움직이지 않거든요. 꼭대기에 있지요.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건 뭐냐 하면 중앙의 자리에 있고, 수직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직적인 활동을 해야지,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대로 한 자리를 중심삼고 동서남북으로 휩쓸면 안 되는 거예요. 수직적인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것은 직단거리를 통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