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의 신비로 본 하나님의 실존
얼굴에 시커먼 눈썹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적마다 ‘왜 이렇게 시커먼 것이 있지?’ 하면서 기분 나빠할지 모릅니다. 이것이 없으면 얼굴이 얼마나 희멀끔하고 좋겠습니까? 그런데 왜 이것을 붙여 놨느냐? 사람들의 얼굴에 털이 나 있으면 눈썹이 필요하겠습니까? 짐승들은 엎드려 기어 다니니까 눈썹이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그 형태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서서 다니니까 눈썹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눈썹이 나 있는 부위는 대개 살짝 높습니다. 눈썹 부위가 슬쩍 높아져서 산맥을 잘 이루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명당 중에서도 왕 명당자리입니다. 왜 이렇게 만들어졌겠습니까? 사람이 서서 다닌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기어 다닌다면 눈썹이 필요 없습니다. 정말 잘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눈썹이 한쪽 방향으로 나 있습니다. 왜 이렇겠습니까? 비가 와서 물이 흐를 때 한 곳으로 흘려보내기 위해서입니다. 눈썹이 한쪽 방향을 향해서 나 있고 살짝 옆쪽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에 물이 흘러내릴 때 영락없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만일 눈썹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땀이나 빗물이 눈으로 다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눈이 쓰려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못 산다는 것입니다. 눈을 가만 보면 눈썹도 미덥지가 못해서 또 눈꺼풀로 둘러놓았습니다. 눈꺼풀로 둘러 눈을 보호하게끔 해 놨습니다. 눈물은 움푹한 곳을 통하여 옆으로 흘러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안전보장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설계를 했는지 모르지만 몇 천년 몇 만년 연구해서 만들었을 것입니다.
코가 만약 뒤집어졌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소낙비라도 오게 되면 큰일 납니다.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 생각해 보십시오. 웃을 일이 아닙니다. 코는 만물 가운데서 인간을 상징합니다. 인간에게는 천도가 있습니다. 상하관계 질서를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코는 왜 밑으로 내려오면서 넓어졌느냐?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입이 큰일 난다는 것입니다. 빗물 같은 것이 입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면 입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코가 아래로 향하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얼굴을 보면 신기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입술을 보면 기기묘묘합니다. 입술하고 이빨이 잘 어울립니다. 그런데 입술하고 이빨이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불과 몇 밀리미터밖에 안 됩니다. 이것이 위험하다면 이 이상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아차 잘못하게 되면 큰일 납니다. 그렇지만 불안을 느낍니까? 먹을 때는 그저 먹는 것에 바쁘지 불안을 안 느낍니다. 혀도 얼마나 기기묘묘합니까? 입속에서 끌어당기고 밀고 하면서 작두 같은 이빨 사이를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도 충돌 없이 얼마나 박자를 잘 맞춥니까? 조화통이라는 것입니다.선생님이 말을 참 빨리 합니다. 이렇게 빨리 하는데도 어쩌면 이렇게 박자를 맞추고 처음 만난 여러분과 정들 수 있게끔 말하게 하는지 정말 기기묘묘한 조화통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혀가 손가락과 같은 일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일 납니다.
본심작용으로 본 하나님의 실존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우리는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가 있는 것을 압니다. 어떻게 아느냐 하면, 공기로 숨을 쉬고 살기 때문입니다. 공기가 무슨 맛이 있습니까? 맛도 없고 보이지도 않지만 분명히 공기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압니다.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참 신기합니다.
하나님이 사는 곳은 어디겠습니까? 하나님은 가장 가치 있는 사랑에 정착합니다. 남자 여자 두 사람이라고 하면, 하나님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일체화되고 변하지 않는, 통일된 애정의 가장 밑바닥에 수직으로 계십니다. 남자 여자가 하나되면 그곳이 중심점이 되는 것입니다. 신비한 기도의 경지, 영적 체험권에 들어가서 ‘하나님!’ 하게 되면 속에서 ‘왜 부르느냐? 여기 있다, 여기!’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여기’라는 것은 자기 마음 가운데입니다. 심신일체가 된 사랑의 중심점, 수직의 자리입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의 중심은 어디냐? 아무리 작더라도 그 중심은 양심입니다. 우주의 사랑의 축이 머무르는 곳, 지탱하는 선단지(先端地)는 자기 양심입니다. 심신일체가 된 그 양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뿌리, 생명의 뿌리, 혈통의 뿌리, 양심의 뿌리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있다면 왜 못 느끼느냐? 나하고 하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더불어, 생명과 더불어, 혈통과 더불어, 양심과 더불어 하나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뿌리입니다. 하나님을 나타내려면 사랑을 사방으로 뿌리라는 것입니다. 투입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자기 생명과 사랑과 이 모든 것을 희생시켜 완전히 영의 자리에 돌아가면 하나님이 주인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이 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했기 때문에 종적으로 눌려 있습니다. 이것을 횡적으로 연결될 수 있게끔 하면 하나님이 자기 양심 가운데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