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의 슬픔의 노정 앞에 머리숙이게 하옵소서
아버님!
아버지를 모시고
겸손히 경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은
영원한 저나라에서
아버지와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제 저희들,
마음의 문을 열고 찾아가게 될 때
그 마음의 중심에 아버지의 심정을 느껴서
내 마음의 주체적인 명령에
내 몸이 따라 줄 수 있는
그리운 그 날을 찾고 있사오니,
오늘 저희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당신의 음성을 들어서
잃어버렸던 자신의 몸을 찾을 수 있고,
아버지께서 저희 하나를 찾기 위하여
저희 배후에서
환란과 수고의 역사과정을 거쳐온 것을 느껴
스스로 머리숙일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아버지에 대한 황공한 마음을
스스로 몸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을 찾아오시는 아버지는
언제나 영광의 아버지로서만
찾아오시는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슬픔의 주인공으로,
혹은 고통의 주인공으로 찾아오시었고,
비운의 표정으로 찾아오시었습니다.
이런 아버지인 것을 몰랐던 연고로
저희가 저희의 슬픔을 아버지께 맡기기를 원했고,
저희의 어려움을 아버지께 맡기기를 원했으며,
저희의 비운을 아버지께 떠맡기기를 원했던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역사노정을 걸어오시면서
슬픔을 가누시고 탄식하며 찾아주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타락의 종족임을 저희가 깨닫고
천만년의 아버지의 수고를 덜어 드리려 한다 할진대,
아버지의 슬픔의 노정을 모르는
아들딸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주.
(1958. 9. 14)